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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과거사, 청산 아닌 화해로 풀어야”
‘상속된 책임성’ 7개국 워크숍 연 곽준혁 고려대 교수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수송동 일본 대사관 앞에서는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 집회가 열렸다. 908번째다.

17 년이 넘도록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수요 집회를 이어오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이같은 과거사 문제들이 이렇다할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한·일 관계가 더 발전할 수 있을까. 한국·일본·중국이 3국 정상회담을 통해 동아시아 지역의 평화와 안정, 새로운 미래를 마련하고자 노력한 지도 10년이 지났다. 지난 10월에도 3국 정상이 베이징에서 만나 정치·경제·환경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상호 협력하기로 손을 모았다. 3국의 협력이 아시아의 미래를 위해 가야 할 길이란 공감대를 확인한 것이다. 하지만 그 길이 쉽지만은 않다. 동아시아 국가들 사이엔 침략과 수탈의 과거사, 풀리지 않은 감정의 앙금이 가로놓여 있기 때문이다. 과거사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는 3국 앞에 놓인 공통의 과제이며 3국이 함께 풀어나가야 할 숙제다.

그 숙제를 풀기 위한 행사가 지난 11일 열렸다. 고려대 ‘동아시아연구원 가치와 윤리센터’가 주최한 국제 워크숍이다. ‘과거사 화해와 상속된 책임성’이 주제였다.
워크숍에선 과거사 문제를 청산이란 관점에서 볼 것이 아니라 화해라는 측면에서 볼 것을 제안했다. 그러면서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세 나라 국민들의 생각이 같이 바뀌지 않고 외교적 차원에서 청산이나 화해를 해봐야 동북아의 민족주의가 만들어내는 긴장을 극복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워크숍엔 국내외 학자 11명이 참석했다. 미 MIT 멜리사 노블스(정치학과) 교수, 영국 브리스틀대 대니얼 버트(정치학과) 교수, 미국 세튼홀대 이난 허(국제외교학과) 교수, 일본 와세다대 우메모리 나오유키(정치경제학과) 교수 등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토론의 장을 만든 이는 고려대 곽준혁(정치외교학과) 교수다. 시카고대에서 정치학 박사를 받은 그는 동아시아연구원 가치와 윤리센터 소장도 맡고 있다.

-왜 과거사 청산이 아니고 과거사 화해인가.
“과거사 해결이 청산이라는 데 초점이 맞춰져 왔다. 우리도 위안부를 비롯한 과거사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청산 중심으로 전개했다. 잘못된 일에 대한 배상 중심이었다. 하지만 여기에 국한된 과거사 정리는 미래지향적이지 못하다. 미래지향적인 협약을 염두에 두고 과거 문제에 접근하는 것과 배상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큰 차이다.”

-배상을 통한 과거사 청산과 미래 지향적인 협약의 차이는 무엇인가.
“배상을 강조하면 양 국가 간의 민족주의나 과거의 행위에 대한 모욕감을 자극할 수 있다. 진지한 화해의 기틀이 조성되기보다 외교적인 해결로 흐를 수도 있다. 또 광범위한 시민들의 각성 없이, 외교적 차원에서의 얕은 화해는 동북아의 민족주의가 만들어내는 긴장을 극복할 수 없다. 보다 두터운 형태로 시민 차원에서의 화해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배상과 화해의 주체가 시민이어야 하고, 배상과 화해의 범위도 물질적 배상에서 정신적 회복에 이르는 화해가 돼야 한다. 그래야 미래지향적일 수 있다. 미래지향적인 화해를 위해선 우리가 한 잘못도 얘기하고 성찰해야만 화해가 가능하다. 위안부 문제는 우리가 질문하지만 베트남 문제는 우리가 응답해야 하는 거 아닌가.”

-이번 국제 워크숍의 의미는 과거사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고 동아시아에서의 민족주의적 성향을 극복하는 것이라고 보면 되나.
“그것은 기본 과제다. 과거사 화해를 위한 국내외 조건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한국 문제의 세계화가 필요한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의 여러 시민단체는 위안부 문제를 세계인들에게 각성시키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이제는 한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유사한 일의 재발을 막고자 하는 세계인의 문제로 우리의 과거사 문제를 확대 적용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과거사 화해 없이 동아시아 공동체도 불가능하다.”

-과거사 청산이나 화해가 얘기된 것은 언제부터인가.
“1945년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이 최초다. 미국·영국·프랑스·구소련에 의해 개최됐고 나치 지도자들이 재판을 받았다. 과거사 화해의 모델로 바람직한 것은 독일이다. 독일은 유대인 학살에 대해 엄청난 배상금을 지급했고 70년에는 빌리 브란트 총리가 유대인과 폴란드인을 학살한 바르샤바 기념비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한 적이 있다. 독일은 나치 정권 희생자 연방배상법도 제정했다.”

-과거사 화해에서 정치 지도자의 사과가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
“사과가 매우 중요하다. 정치적으로 립서비스라고 하는 이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정치 지도자가 사과하는 것은 그가 속한 사회의 시민들을 대표해서 의사 표현을 하는 것이다.”

-과거사 화해를 위한 동아시아의 상황은 어떤가.
“동아시아에서 한·중·일의 외교적 관계는 회복돼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시민들 사이에서 적대적 감정은 남아있다. 외교적 관계 회복은 수준의 폭이 좁은 국가 간의 화해였다. 지금은 한 차원 높은 화해가 필요하다. 동아시아에서 민족주의 바람이 불면 언제든 서로 적대적인 관계로 갈 수 있다. 중국과는 동북 공정이 있고 일본과는 독도 문제가 있다.”

- 일왕(일본선 천황)이 사과해야 하나. 사과하면 화해가 되는 것인가.
“일왕의 사죄에 대해 현실적으로 너무 자주 요구해서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하는 분들이 있다. 잦은 요구가 일본의 보수우파들의 자존심을 건드릴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요구할 것은 요구할 수 있다. 상징적이지만 일본 지도자가 사과함으로써 일본 내부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의 시각도 바로잡을 수 있다. 민주당 정권에서 일왕의 사과는 자민당 정권에서와는 다르다고 본다. 하토야마 정부가 과거 잘못을 인정하는 전제에서 주변국과의 발전적 관계를 모색하겠다고 했다. 그 의미는 일왕의 사과가, 곧 실질적인 정책적인 노력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우리 정부의 대일 접근법도 달라져야 하나.
“일왕의 사과는 외교적으로 거론하기 불편한 문제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게 발판이 될 수 있다. 한층 미래지향적이고 업그레이드된 과거사 화해의 틀을 제시한다면 일왕의 사과를 받아낼 수 있을 것이다.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이 문제의 해결을 요구하지 말고 그렇다고 민족주의를 지나치게 의식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안 된다. 미래지향적인 과거사 화해에 초점이 맞춰진다면 일본도 일왕의 사과를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중앙SUNDAY 3월 14일자(제1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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