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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겨울올림픽은 우리에게 큰 자부심을 안겨 주었다. 우리나라 선수들은 서양 사람들의 전유물인 것처럼 보였던 종목에서도 두각을 나타냈고 처음 출전하는 종목에서도 성실과 최선으로 한국인의 긍지를 온 세계에 드높였다. 이들로부터 우리는 힘들어도 다시 일어서야 하는 이유, 그리고 희망으로 서로의 짐을 덜어주는 따뜻한 배려를 배웠다. 참으로 오랜만에 느끼는 뿌듯함이다.

민족주의라는 단어가 없을 때 서양에서는 이런 자부심을 애국심 또는 조국에 대한 사랑(amore della patria)이라고 불렀다. 이때 애국심은 우리가 민족주의로 표현하는 감정과 다른 내용을 갖고 있었다. 민족주의가 상상 속에서 존재하는 신화를 통해서라도 민족적 동질감을 획득하려고 한다면 애국심은 삶을 향유하는 터전과 실제적 경험을 공유하는 구성원에 대한 자발적 애정에 기초했다. 그리고 민족주의가 정치체제의 성격보다 공동체의 정신적 문화적 특성에 대한 애착을 우선시한다면 애국심은 공동체에 대한 맹목적 충성보다는 시민적 자유와 정치적 권리가 보장된 정치체제의 구현을 중시했다.

서구, 민족주의 뺀 연대감 골몰

지금 서구 사회에서는 민족주의가 등장하기 이전의 애국심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다민족으로 구성된 나라뿐만 아니라 비교적 민족적 동질성이 높다고 평가받는 나라에서도 민족주의 없는 애국심을 진지하게 논의하고 있다. 민족주의로는 국경을 넘나드는 대규모 이주가 가져온 정치사회적 문제를 풀 수 없다는 자각,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사회적 과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최소한의 연대의식이 필요하다는 공감이 크게 작용한 것이다. 그리고 다른 문화에 개방적인 태도를 가지면서도 자기 공동체에 헌신적인 시민의식이 민족주의 이전 애국심을 통해 형성될 수 있다는 확신도 한몫을 한 것이다.

반면 우리에게 민족주의와 구별되는 애국심은 아직 생소하다. 오랜 시간 동일한 영토에서 형성된 문화적 동질성만이 그 원인은 아니다. 근대 국가의 성립과 동시에 전개된 식민지 경험, 광복과 함께 시작된 분단과 6·25전쟁의 집단적 충격, 국가주도의 근대화와 아래로부터 시작된 민주화 과정까지, 민족주의가 담당해 온 역할이 이러한 생소함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사실 어떤 사건이 가져온 충격이 너무 크면 그것을 의식적으로 피하려는 것처럼 우리는 민족주의가 제공하는 기억과 망각의 도식 속에서 과거의 문제와 미래의 숙제를 해결하려고 무척이나 노력해 왔다.

문제는 오늘날 한국적 민족주의가 제공하는 사회적 연대감이 시민적 삶의 방식으로 확대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최근 실시된 한중일 3개국 청소년 가치관 조사의 결과가 이런 문제를 잘 보여준다. 나라에 대한 한국 청소년의 자부심이 3개국 중 가장 낮았고 사회의 공정성에 대한 신뢰도 가장 낮았다. 반면 다른 나라에서 태어나고 싶다고 응답한 청소년은 한국이 가장 많았고 나라가 위급한 상황이라면 무엇이든지 하겠다는 한국 청소년의 수는 중국의 거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역설적으로 다문화 사회로의 전환에 대해서는 3개국 중 한국 청소년이 가장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어른들의 세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최근 여론 조사에 따르면 성공의 조건으로 재력을 꼽은 경우가 10년 전의 35.8%에서 60.5%로 급증했고 정치 조직과 사회 제도에 대한 신뢰도도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평균 6% 미만으로 나왔다. 물질주의적 가치와 개인의 능력에 대한 의존도가 시민적 삶에 대한 기대를 크게 압도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그 정치적 결과가 특히 사회적으로 보호를 받아야 할 개개인에게 치환되고 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민족주의의 부정적 측면을 지적하는 정도에 그치는 것은 불충분하다. 아울러 민족주의를 날조된 정치적 선전으로 치부하거나 문화적 특수성을 무시한 채 보편 이성에 기초한 도덕률만 고집하는 것도 신중하지 못한 처사다. 서구 사회가 실험하고 있는 민족주의 없는 애국심과 같이, 변화하는 세계와 공동체에 대한 시민적 애정을 조화시킬 수 있는 일관된 판단 기준을 찾아야 한다.

한국도 공동체의식 제고 고민을

로마 공화국의 정치철학자 키케로는 ‘의무론’에서 비록 공동체의 생존이 걸린 전쟁이라 할지라도 잔인함과 야만성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그 이유를 국내외 정치의 연계에서 찾는다. 외국인에게 행하는 잔인함과 부정의가 결국 시민의식을 부패시켜 공화국을 무질서에 빠지게 만든다는 것이다. 혹자는 키케로를 이상주의자라고 폄하할지 모른다. 그러나 무자비한 폭군들이 살았던 르네상스시대 사상가들조차 그의 경고를 정치적 현실주의라는 범주에서 다루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때다.

곽준혁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동아일보 2010년 3월 12일자(금요일 A30면)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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