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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도 함께 물려받아야 할 과거사”

한일병합 100년과 경술국치 100년이라는 말이 2010년의 시작을 장식한다. 지난해 아시아공동체 또는 동아시아공동체와 같은 전망적 청사진이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했다면 올해는 벽두부터 모두의 기억 속에 남은 과거의 상처가 우리의 심장을 뛰게 만든다. 지난 2년간 동아시아 각국이 경쟁적으로 제안한 지역협력 구상이 더는 우리의 관심사가 아닌 듯 보일 정도다. 호주 총리가 제안한 아시아태평양공동체, 일본 총리가 주창한 동아시아공동체, 그리고 우리 대통령이 제시한 신아시아 외교구상은 당분간 어떤 매체에서도 듣거나 볼 수 없을 것 같은 분위기다.

이런 가운데 경술국치에 대한 지나친 강조가 외교적 마찰만을 초래할 수 있다는 주장이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과거사 청산과 관련된 요구가 일본의 보수주 의자에게 대중적 선전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걱정도 있고, 하토야마 총리의 등장으로 녹았던 한일관계가 민족주의라는 한파에 얼어붙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과거사 청산이나 과거사 화해가 지역협력과 평화공존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은 아니라는 의견도 나온다. 산케이신문이나 세이론(正論)과 같은 일본 보수진영 논객의 글이 아니라 정치적 현실주의와 경험적 관찰이라는 전제에서 과거사 청산 요구가 가져올 결과에 대한 비관론이 고개를 든다.

과거 성취만 누리려는 日신세대

과거사에 대한 민족주의적 집착은 부정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일본의 진보적 지식인조차 ‘과거사 청산’보다 ‘과거사 화해’라는 말을 선호하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도 있다. 일본의 양심으로 일컬어지는 세카이(世界)라는 잡지에서조차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을 담은 것은 단 두 차례, 1965년 5월 스즈키 다케오의 글과 2010년 1월 와다 하루키의 대담뿐이다. 그러나 과거사 청산이나 화해가 우리의 시간을 미래에서 과거로, 우리의 시계(視界)를 동아시아에서 한반도로 축소시킨다고 단정하는 것은 신중하지 못한 처사다. 과거에 저질러진 잘못에 대한 올바른 반성 없이 평화로운 미래만을 꿈꾸는 일은 가능하지도 적절하지도 않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일본의 젊은 세대가 과거 세대의 반인륜적 행위에 대한 책임을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일본의 젊은 세대는 거듭되는 이웃나라의 사과 요구에 피곤함을 느끼고, 대다수가 과거 세대의 반인륜적 행위에 책임을 져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과거 세대가 만들어 놓은 성취는 향유하려 하지만, 일본이라는 나라의 시민으로서 영위하는 번영은 자랑스럽지만 과거 세대가 저지른 잘못에 대한 책임이 자신들에게 상속된다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는 논리다.

상속된 책임성을 회피하는 일본의 젊은 세대에게 일본 보수 논객의 논리는 한편으로는 심리적 안도감을, 다른 한편으로는 잘못된 민족적 자부심을 제공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 차원의 보상은 이미 끝났다고 말함으로써 도덕적 부채에서 해방되도록 도와줄 수 있고, 식민지배나 난징(南京) 학살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의 산물이었다고 선전함으로써 과거 세대의 반인륜적 행위에 대한 부끄러움을 잊어버리도록 유도할 수 있다. 만약 그러하다면 상속된 책임성에 무관심한 젊은이가 과거를 통해 배울 수 있는 내용은 힘의 철학, 즉 약육강식으로 무엇이든 정당화하는 무지막지한 정글의 법칙이다.

동일한 잣대로 우리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민족적 자존심의 회복만을 위해 과거사 청산을 요구하는 것은 아닌지 돌이켜 보아야 한다. 베트남전쟁에서 과거 세대가 저질렀던 반인륜적 행위에 대한 우리의 책임은 잊으려 노력하고, 베트남전쟁에서 과거 세대가 희생해서 가져다준 경제적 혜택만 향유하고자 하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본군위안부 할머니의 고통을 민족적 수치심으로 표현하는 습관 속에서 식민지배가 가져다준 피해를 단지 힘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역사 앞에서 미래의 반인륜적 행위를 억제하고 견제할 용기를 기대할 수 없다.

시민적 품위가 미래 평화의 열쇠

시민적 품위를 통한 인간성 회복이 한국과 일본의 뒤엉킨 실타래를 풀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거듭된 사과가 일본인의 민족적 자존심에 상처를 줄 수 있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1971년 독일, 1993년 미국, 2008년 호주에서 보았듯이 자신의 자유가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의 자유를 소중히 여기는 시민은 과거 세대의 잘못에 대한 사과를 오히려 자랑스럽게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키케로가 시민적 품위(decorum)만으로도 불신이 없는 평화가 가능하다고 믿었던 이유가 있고, 여기에 힘의 속성을 꿰뚫었던 마키아벨리가 자유로운 삶을 향유하는 시민의 인간성(umanit`a)에 미래를 걸었던 이유가 있다.

곽준혁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동아일보 2010년 1월 8일자(금요일, A30면)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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