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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이 필요
침묵하는 다수에게 귀 기울여야

6·2지방선거가 끝난 지 2주가 지났다. 선거 결과에 대한 정치권과 학계의 폭발적인 관심도 월드컵이 시작되자 물밑으로 잠시 가라앉았다. 거셀 듯했던 선거의 후폭풍도 월드컵의 맞바람에 수그러든 듯 보인다. 여당은 선거를 통해 확인한 시민의 차가운 시선을 돌려놓을 방도를 고민할 시간을 얻었고, 야당은 현 정권에 대한 견제만으로는 정국을 주도할 수 없다는 날카로운 지적을 숙고할 시간을 갖게 되었다. 시민의 따가운 눈총으로부터 한 걸음 떨어져서 자유롭게 숙제를 풀 수 있는 시간이 생긴 셈이다.

그러나 여야 모두 자기 숙제가 무엇인지 잘 모르는 듯하다. 계층투표의 결과나 세대투표의 출현이라고 떠들던 당내 목소리도 잠잠해졌고 여야 모두 7·28 재·보궐선거에서 승리할 방법에만 몰두한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 뼈아픈 질책을 받은 여당이 선거 전략에만 몰두하는 모습이 안타깝다. 월드컵이 끝난 이후의 나른함과 여름 휴가철의 분주함 속에 치러지는 재·보궐선거에 큰 기대를 거는 것 자체가 문제다. 분위기를 전환시킬 수는 있겠지만 젊은 층의 참여가 저조할 재·보궐선거에서의 승리만으로는 지방선거에서 노정된 숙제를 결코 풀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가 던져준 숙제는 한국 정당정치의 실패와 관련이 있다. 크게 두 가지 점에서 그렇다. 첫째, 여론조사에 서 침묵했던 다수의 의사가 현 정권에 대한 반감으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선거 전문가들에게도 선거결과는 뜻밖이었다. 대부분의 여론조사가 민심의 향방을 예측하지 못했다. 15% 미만의 응답률을 갖는 여론조사의 구조적 한계일 수도 있고 막판에 견제심리가 작용했을 수 있다. 이런 이유는 전부터 발견되던 것이다. 보다 큰 관심을 끄는 이유는 여론조사에 응답을 거부하거나 자신의 의사를 숨긴 다수가 생겼기 때문이다.

여론조사를 통해 표현되지 않았던 다수의 목소리가 무관심이든 저항이든, 승리가 점쳐졌던 집권 여당은 이들이 여론조사에서 침묵했던 이유를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권자에게 제시했던 의제와 함께 이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 조성했던 선거 환경도 다시 검토해야 한다. 혹시 시민의 의식은 벌써 앞서 나갔는데 아주 오래되고 낡은 틀로 이들을 옥죄지는 않았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어떤 계층이 자신의 의사를 숨겼고 어떤 세대가 응답을 거부했는지 알 수가 없다. 이런 노력이 없으면 집권 여당은 앞으로도 합리적 판단을 원하는 중산층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고 선진화의 그늘에서 불확실한 미래를 염려하는 젊은 세대에게 신선한 메시지를 던질 수 없다.

둘째, 어느 정당도 선거결과를 자기 승리로 귀착시킬 수 있는 전망적 제안을 내놓지 못했다는 점이다. 현 정권에 대한 견제가 야당의 핵심 주장이었다면 선거결과는 2006년에 있었던 지방선거의 재판에 불과하다. 사실 대통령제하에서 중간선거적 성격을 지닌 지방선거나 재·보궐선거가 국정 운영에 대한 저항투표로 귀결된 현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러나 현 정권에 대한 견제가 지방선거의 핵심 주제가 되는 것이 항상 바람직하지만은 않다. 선거는 회고적 처벌만큼이나 전망적 제안을 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야당으로부터 미래에 대한 희망적 대안 없이 독단적 국정 운영에 대한 시민적 견제를 더 많이 요구받았다는 일 자체가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한국 사회를 대표하는 정당은 어느 나라의 정당보다 중도를 지향하는 포괄정당의 모습을 갖고 있다. 문구만 보고서는 어느 정당의 전문이고 강령인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대 정당은 사안마다 이념적으로 윤색된 적나라한 논쟁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 중도실용이란 이름하에 어떤 구별된 원칙도 공표하지 않는 정당이 벌이는 이념적 대결에 유권자는 모두 소외됐었다. 지금부터라도 정당이 서로 구별되는 긍정적인 전망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앞으로의 선거는 중장기적 비전을 통해 구체화된 정책대결이 아니라 유권자의 요동치는 관심을 선취하고자 하는 경쟁으로 전락할 것이다.

선거에서 나타난 표심과 월드컵 16강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갖는 공통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일상의 어려움으로부터 잠시 해방되어 반전이 가능한 스포츠의 세계에 열광하는 젊은이의 고함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대한민국이라는 구호 속에 담겨진 새로운 희망에 대한 시민의 목마름을 가슴 깊이 되새겨야 한다.

정당 지도자는 자신들이 대표하지 못한 목소리를 듣기 위해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으로 무장해야 하고 정당은 면밀한 관찰과 긴 호흡을 통해 일관된 원칙이 담긴 전망적 제안을 제시해야 한다. 여기에 피렌체 몰락의 원인을 광장에서만 소리치고 궁정에서는 침묵했던 대중 정치인에게서 찾았던 마키아벨리의 혜안이 있다.

곽준혁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동아일보 2010년 6월 18일자(금요일 A30면)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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