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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준혁 선생님과 샹탈 무페 교수와의 대담이 아세아연구 137호(52권 3호 2009)에 “민주주의와 한국사회 : 샹탈 무페 교수와의 대담“이라는 제목으로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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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보도 2009년 9월 4일자(23면)]

“한국민주주의, 제도 이전에 시민성 문제”
‘아세아연구’ 샹탈 무페 대담
“삶의 양식 있어야 절차 유효…다원적 민주주의 고민할 때”

“민주주의의 절차적 형태를 수립하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민주적 시민성, 민주적 정서를 발전시켜야 한다. 한국 같은 신생 민주주의 국가들은 특히 그렇다.”

1985년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와 함께 저술한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국내에는 1990년 <사회변혁과 헤게모니>란 제목으로 번역)이란 책으로 서구 좌파학계에 포스트마르크스주의 논쟁을 촉발시킨 샹탈 무페(66·사진) 영국 웨스트민스터대 교수가 한국 민주주의가 지닌 불완전성과 한계를 꼬집었다.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가 펴내는 계간 <아세아연구> 가을호 특집 대담을 통해서다.

무페 교수는 곽준혁 고려대 교수(정치학)와 한 대담에서 “민주적 개인성이 있어야 규칙과 절차가 뒤따라올 수 있다”며 “민주주의에서 이 점은 매우 중요하고, 한국 같은 국가들에선 특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확보돼 있어도, 시민들이 그 절차에 부합하는 삶의 양식을 지니고 있지 않다면 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는 얘기다. 올바른 절차가 확보된다면 어떤 사회적 대립이나 갈등도 해소될 수 있다고 가정하는 합리주의적 합의 모델에 대한 비판인 셈인데, 민주주의 위기론이 확산되고 있는 오늘 한국에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아 보인다.

무페 교수는 대담에서 정치에 대해 지나치게 합리주의적으로 접근하는 태도를 비판했다. 현대 사회는 ‘조화로운 전체’가 아닌, 갈등의 요소를 필연적으로 내장한 다원성의 사회인 만큼, 불일치의 여지를 봉쇄한 채 이성적 합의만을 일방적으로 강요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무페 교수가 밝힌 자신의 이론적 목표는 “(정치·사회 구조 안에) 적대감의 여지를 남겨두면서도 자유주의 정치체제를 발전시킬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무페 교수는 이것을 “급진적 민주주의라는 기획을 통해 내가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을 쓰던 1980년대 초와 오늘날의 상황을 비교한 대목도 눈여겨볼 만하다. 무페 교수는 말한다. “시민적 권리들은 공격받고 사회적 권리들은 박탈당했다. 1980년대 초반보다 지금 상황이 더 나빠졌다. 퇴보한 지점에서 출발해야 하기 때문에 급진 민주주의를 실현하기가 더 어려워진 것이다.”

지난해 세계를 강타한 미국발 금융위기를 “특정한 자본주의 조절양식의 위기”로 파악하는 그는 ‘위기 이후’ 눈앞에 나타난 국가 역할의 재조정과 관련해 “두 가지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예측한다. “시스템을 고쳐 시장을 좀더 규제하는 신자유주의 이전 형태로 상황을 되돌리는 것”이거나 “한층 평등주의적인 조절양식으로 실질적 진전을 이뤄내는 상황”이다. 물론 그는 첫 번째 경우가 현실화할 개연성이 크다고 본다.

대담자 곽준혁 교수는 “지금의 한국사회는 법적 절차 이외에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어떤 준비된 기제도 없는 것 같다”며 “특히 최근의 정치상황은 갈등이 자유로운 시민들 사이에서 불가피하다는 인식,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원칙을 찾기 위한 심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우리에게 보여준다”고 진단했다. 이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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