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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회는 빈곤하다. 이러한 판단은 세 가지 경험적 관찰에 기초하고 있다. 첫째는 새로운 사조에 대한 증폭된 관심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지적 조급성이다. 몇몇 사려있는 학자들이 지적하듯, 한국 사회에서 어떤 지적 경향의 부침은 자동차 모델이 바뀌듯 너무나도 자주 그리고 짧은 시간에 일어난다. 사회 저변으로부터 시작해서, 학문적 논쟁을 통해 인식론적 기초부터 다진 후에 대중적 화두와 정책으로 나타나고, 대중의 관심에서 벗어나더라도 학문적 주제로 여전히 거론되는 서구의 지적 문화를 보면 부끄러워진다. 아주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되는 것조차도 진지하고 꼼꼼하게 연구하는 학문적 풍토에 의해 주도되는 일본의 서적 문화를 보면 안타깝기까지 하다. 이탈리아의 서점에 가면 아직도 마르크스와 그람시가 가장 중심에 진열되어 있고, 미국의 시카고대학 학부생들은 사회과학분야 필수과정에서 여전히 마르크스의 『브뤼메르 18일』을 읽고 있지만, 80년대를 뜨겁게 달구었던 사회구성체논쟁의 극단적 주장들의 소재를 되묻게 되는 한국사회의 지적 변덕은 의아하기만 하다. 이러한 현상은 한편으로는 삶의 세계와 분리된 지적 감수성에 의해 주도되었던 한국의 민주화 운동의 성격과 결코 무관하지 않고, 다른 한편으로는 당면한 현안에 대한 즉흥적인 대답을 요구하는 정치권의 무모함을 고치기보다 순발력으로 대응해온 지적 적응의 결과일 수도 있다. 문제는 이렇게 익숙해진 지적 조급성이 민주주의와 관련된 논의에서도 발견되고, 그 결과 민주주의의 논의가 수사적 기교와 정치적 선택에 의해 유행처럼 번졌다가 우리의 시야에서 더욱 멀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아세아연구 131호(51권 1호, 2008)의 기획, “한국 민주주의: 담론전략을 넘어 가능성의 실현으로“의 서문으로 실린 내용입니다.
(원문은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 민주주의: 담론전략을 넘어 가능성의 실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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