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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서 자신을 지지해준 사람들의 파당적 이익을 넘어설 수 있는 능력을 정치인이 가져야 할 중요한 덕목의 하나로 든다. 그는 그 이유를 다양성에서 찾는다. 대중은 다양한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기에 의견이 동질적일 수 없으며, 따라서 전체를 대변해야 하는 지도자는 파당적 이해를 넘어 다양하고 이질적인 의견을 포괄할 수 있는 전체적 조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혹자는 전체적 조망을 정치적 배신이라고 부를지 모르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것을 정치적 사려(phronesis)라고 말한다.

시험대 오른 통합의 정치력

지금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정치적 사려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변화를 대변해온 자신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워싱턴 정가에서 잔뼈가 굵은 람 이매뉴얼을 비서실장으로 내정했고, 하버드대 총장으로 재직 시 여성 폄훼 발언과 흑인 교수 비하 발언으로 자진사퇴한 로런스 서머스 전 재무장관을 백악관 경제자문회의 의장으로 선택했으며, 자신을 위해 헌신했던 지지자의 원성을 뒤로 하고 경선 과정에서 경쟁자였던 힐러리 클린턴을 국무장관으로 발탁했다.

물론 오바마의 행보는 위기마다 미국인들이 보여주는 초당적 협력을 유도하기 위한 것일 수 있고, 당내 경선에서 1800만 표를 획득한 힐러리 클린턴을 내각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당을 결속시키겠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파격적 인선을 정치적 계산으로만 볼 수는 없다. 그의 선택이 정치적 위기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공화당 전국위원회는 톰 대슐 전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의 보건후생장관 내정을 놓고 정치적 대립을 예고했고, 몇몇 전문가는 외교안보팀이 각론에서 불협화음을 보일 소지가 있다고 우려한다.

오바마가 정치적 위기를 감수하면서도 통합의 정치력을 선보이고 싶을 수도 있다. 이념적 대립이 첨예하던 시기에 ‘하버드 로 리뷰’의 편집장으로 당선된 후, 보수파를 필진으로 더 많이 기용함으로써 얻은 조정자로서의 평판을 재현하고 싶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를 전국적인 인물로 바꾸어준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말했던 “진보적 미국, 보수적 미국은 없고, 미합중국이 있을 뿐이다”는 메시지에 얽매여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선택은 그가 입버릇처럼 말했던 아버지가 흑인이고 어머니가 백인이기에 가능했던 ‘인생사의 산물’이자, 대학원 동료였던 로런스 트라이브 하버드대 법대 교수가 회고하는 ‘차이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차이 넘어선 민주적 리더십

오바마는 탁월한 연설가에서 민주적 지도자로 탈바꿈하고 있다. 다른 후보자와의 차이를 강조함으로써 유권자의 불만을 변화에 대한 요구로 끌어내던 파당적 전략을 버리고, 자신의 지지자뿐만 아니라 적대적인 관계에 있던 사람들의 희망까지 대변하는 민주적 지도자로 옷을 갈아입고 있는 것이다.

사실 민주적 리더십이라는 말 자체가 상반된 단어가 합쳐진 모순어법(oxymoron)이다. 민주주의는 대중적 의사를 통한 변화를 강조하는 반면, 리더십은 대중의 의견으로부터 일정정도 독립된 지도자의 판단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설적 조합을 가능하게 하는 요인이 바로 통합의 정치력이다. 차이에서 비롯된 무관심과 분열을 관심과 통합으로 전환시키는 능력, 자기와 다른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용기가 민주적 리더십의 핵심적인 내용인 것이다. 오바마의 정치적 실험이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곽준혁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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