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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준혁 선생님께서 국내 처음으로 페팃 교수와 e메일 대담을 진행하셨습니다. 이 대담은 동아일보 2009년 3월 5일(목) A20면에 실렸고,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가 발간하는 계간학술지 “아세아연구” 52권 1호에 실립니다.

“자율-공익 조화된 공화주의, 反시장 아니다”

《필립 페팃 미국 프린스턴대 정치학과 교수(64·사진)는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신로마 공화주의(Neo-roman Republicanism)’ 이론가다. 그가 펴낸 ‘공화주의’(1997년)는 공화주의 저작 중 가장 체계적인 이론서라는 평가를 받았다. 곽준혁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41)가 국내 처음으로 페팃 교수와 e메일 대담을 진행했다. 이 대담은 10일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가 발간하는 계간학술지 아세아연구 52권에 실린다. 대담 중 핵심 내용을 재구성했다.》

신로마 공화주의는 개인의 자율성과 사회의 공공성을 조화시킨 사상이다.

기존 시민적 공화주의가 시민의 정치참여를 강조한 나머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고 다양성을 해칠 수 있다고 비판받은 데 비해 신로마 공화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공동체, 시민의 덕성 등 공화주의의 이상을 실현하는 방법을 찾는다.

신로마 공화주의의 핵심은 ‘비지배(non-domination) 자유’다. 지배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의지를 강요하는 것이다.

자유주의가 간섭받지 않는 것을 ‘자유’로 정의해, 실제로 간섭받지 않으면서도 의지를 강요당할 수 있는 여지를 허용한 반면 신로마 공화주의는 지배받지 않는 것을 ‘자유’로 정의해 다른 개인이나 집단의 자의적 지배를 막기 위한 공공의 합의되고 허락된 간섭은 개인에게 의지를 강요하지도 않고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본다.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합의된 간섭은 지배가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좌우 이념의 갈등을 조정할 대안으로 공화주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오랜 역사의 공화주의를 성찰없이 받아들인 탓에 배타적 애국심이나 시민의 정치참여를 감정적으로 강조하는 도구로 잘못 이해하고 있다.

곽준혁=교수님의 ‘비지배 자유’ 개념은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두 진영으로부터 가장 사려 깊은 공화주의 이론으로 인정받고 있다. ‘비지배 자유’ 개념은 자유주의의 ‘간섭받지 않을 자유’와 어떻게 다른가.

필립 페팃=자유는 간섭받지 않는 게 아니라 자의적 지배를 받지 않을 때 얻어진다. 자유주의자는 간섭만이 자유를 빼앗는다고 생각하지만 오류다. 사회적 관계에서 실제 간섭 없이도 감독(invigilate)과 위협을 통해 자유가 축소될 수 있다. 반면 헌정적, 민주적으로 조직돼 시민의 지지를 받는 국가가 법을 제정하고 세금을 부과하며 범죄행위를 처벌할 때 행사하는 간섭은 개인의 자유를 훼손하지 않는다. 사적 지배에 노출되지 않기 위한 민주적 제한인 국가의 간섭은 도둑이나 침략자의 간섭과 다르다.

=법과 제도의 간섭이 개인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헌정주의가 시민의 역할을 축소시킨다는 비판도 있다. 시민의 책임성이 오직 법적·제도적 ‘비지배 자유’를 통해 제고될 수 있는가.

페팃=시민이 자율적으로 통치에 참여하는 것만이 자유를 정의하는 요소는 아니다. 참여는 사회의 헌정체제와 시민의 자유를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때만 제도적 이상(理想)이 된다. 정부가 확고한 헌정적 제약에 통제되고 민주적 견제에 열려 있어 시민이 원하는 규정(공공선)대로 작동한다면 시민은 통치에 참여하지 않을 때조차 자유로울 수 있다. 시민들은 헌정체제를 통해 정부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견제할 수 있다.

=일부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교수님의 공화주의 이론을 반시장주의라고 비난했다. 시장 규제와 분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페팃=공화주의 이론은 시장에 적대적이지 않다. 시장 교환에서 한 개인이 다른 개인에게 제의한 것이 간섭, 감시, 위협이 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시장 교환 자체는 지배가 아니다. 그러나 조정되지 않은 극도의 비대칭적 힘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지배적으로 변할 수 있다. 공화주의는 시장의 절제(moderation)를 주장한다. 우월한 지위에 있지 못한 사람들이 사적 지배나 불필요한 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시장 활동을 규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지배 자유’ 개념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신자유주의적 변화를 어떻게 생각하나.

페팃=자유로운 세계 시장은 매우 바람직하다. 그러나 공정 무역이라는 기치 아래 시장이 가난한 나라들에 완전히 개방돼 있지 않은 것이 문제다. 공화주의는 사유재산 영역의 끝없는 확장, 급진적 탈(脫)규제를 주장하는 신자유주의를 반대한다.

=첨예하게 갈등 중인 사회에서 정치적인 결단에 호소하지 않고 공화주의의 ‘비지배 자유’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페팃=점진적 접근이 필요하다. 공화주의는 해결 가능한 사안에 대해 인내심을 가지고 제한된 시간과 분야에서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통치철학이다. ‘비지배 자유’는 의견이 다른 사람들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내 대화를 통해 갈등을 조정하는 방법을 모색할 판단의 근거를 제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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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적 공화주의 모델은 ‘로마공화국’

필립 페팃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공화주의의 핵심적 요소를 △‘비지배 자유’ △사적 지배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 권력을 각기 다른 사회 부문으로 분배하는 것 △정부를 견제하고 통치에 참여할 준비가 된 시민으로 꼽았다.

이런 공화주의의 이상을 가장 잘 실현한 현실 국가는 고대 로마다. 로마 공화국은 군주제의 요소인 집정관과 행정관, 귀족제의 요소인 원로원, 민주제의 요소인 민중의회(호민관)로 세 체제의 견제와 균형을 통해 권력의 남용을 막았다.

로마는 법의 심판 없이 개인의 재산과 시민의 자격을 박탈하지 않았다. 로마의 시민은 법 앞에 평등했으며 ‘비지배 자유’를 향유할 수 있는 정치적 권리를 부여받았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2009.3.5(목) 02:58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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